이 글은 글또 10기에 지원하는 김에 작성하는 저의 삶의 지도입니다.
✒️프롤로그
언젠가 이런 형태의 글을 작성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글또를 지원하는 김에 작성해보려고 한다.
사실 이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저번 `인프콘 2024` 이후로 쭉 가지고 있었다. 그때 동영멘토님께 얻은 조언 중 하나가 나를 한 번쯤 탐구해 보라는 것이었다. 근데, 그냥 나를 탐구하는 게 아니라 `취준생`, `신입`, `주니어 개발자`, `사회초년생`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말이다. 즉 현재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고민을 포트폴리오에 담기도 했고, 그러한 영향인지 가고 싶던 기업에서 면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했던 고민의 연장선으로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 어릴 때부터 나는 빌더였다.
나의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무언가는 만드는 것이었다. 거의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어릴 때는 가베라는 나무 블록을 쌓는 놀이를 했다. 부모님께서 시켜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굉장히 좋아했었고 가베로 인해서 집에서 더 시끄럽게 놀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다..(좋은 건가..?) 또 한 가지 특이했던 점으로는 가베 선생님이 해주는 대로 만들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는 위대한(?) 장난감 레고에 푹 빠져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 F-117 전투기, 잠수함, 고구려 시대 공성 병기, 경찰헬기, 소방 헬기, 각종 기지, 마을 등등 생일과 어린이날에는 아빠한테 졸라서 비싼 레고를 샀었던 기억이 있고 평상시에는 용돈이 생길 때마다 동네 문구점에 들러 1000~2000원짜리 자그마한 레고를 사서 조립하고 모았다.
내가 레고에서 느꼈던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만들고 부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당시에 내가 생각하기에 멋졌던 F-117 전투기나 잠수함 같은 경우 15년 이상 지난 지금도 우리 집에서 장식품으로 남아있지만, 다른 레고들은 해체되었다. 그리고 그때 해체했던 부품들을 바탕으로 소방헬기를 공성병기(!)로 업그레이드한다던지 나만의 공중 레고 기지를 만들어서 동생이랑 논다던지 그랬다.
여담이지만 무기류가 굉장히 많은데, 실제로 내가 개발자를 하지 않았다면 방산분야로 진로를 희망했을 것 같다. 어릴 때 성향이 쭉 이어지기는 하는구나.. 어쨌든 초등학교까지의 나는 저랬다.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특히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쪽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쭉 이어진다.
🖥️컴퓨터 맞춰드립니다.
중학교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조립컴퓨터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얼리어답터이신 아빠 덕분에 개인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었다. 2011년 언저리였으니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엄마는 극구 반대했을 정도로. 어쨌든 그렇게 생긴 나의 첫 컴퓨터는 AMD A4-3400 기반의 APU(CPU + GPU) 컴퓨터였다.
처음부터 컴퓨터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두 번의 사건이 있다.
가장 첫 번째 사건은 포맷사건이다. 그때 당시에는 HDD와 파티션의 개념이 없었기에 D드라이브만 포맷하면 C드라이브의 내용이 남아있는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동네 컴퓨터점에 가서 포맷을 해달라고 했고 당연히 정확한 언급이 없었기에 컴퓨터점에서는 모든 자료를 포맷했다. 그렇게 C드라이브에 존재하던 우리 가족의 중요한 자료들(사진, 문서 등등)이 날아갔다. 꽤 크게 혼났다가 며칠을 꼬박 걸려 검색한 뒤 해외 포럼에서 무료 복구프로그램을 받아 많은 사진들을 복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스타크래프트2 사건이다. 사건이라기에는 거창한데, 당시에 나는 스타2를 꼭 플레이하고 싶었다. 90년 대생들은 그렇듯 나도 스타크래프트 세대이기도 하고 스타에 많은 관심을 가지던 사람 중 하나였다. 당시에 5만 원이라는 큰돈으로 스타2 캠페인을 구매했던 기억이 나는데, 막상 컴퓨터에서 하려니 너무 느리고 답답해서 못했었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다 보니 GPU를 장착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GTX 650을 구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타2는 CPU도 중요한 게임이었다... 결국 큰돈을 들여 i5-4460 + GTX650 기반의 시스템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서 게임을 원활히 플레이할 수 있었다.
이런 굵직한 경험을 시작으로 컴퓨터에 대해 정말 많이 알아보고 정말 많은 공부를 했다. 다양한 선택지에서 최선의 조합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였냐면 일단 부모님이 나한테 그 정도 열정이면 전교 1등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그도 그럴 것이 맨날 컴퓨터로 보던 것이 유명한 컴퓨터 커뮤니티인 기글하드웨어와 쿨엔조이였다. 게다가 고1 때는 컴퓨터 부품을 사서 조립하고 설치하다가 고장증상이 나서 교복을 입은 채로 용산 전자상가에 방문한 적도 있다. 걱정된 엄마가 반차를 내고 따라왔을 정도로 용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를 기점으로 꽤나 많은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고 문제해결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일단 우리 가족 컴퓨터 유지보수는 모두 내 몫이었고 친한 친구들을 기점으로 가성비 있는 조립컴퓨터 견적을 짜고 조립도 해주었다. 거의 대학교 가기 전에 10대 이상의 컴퓨터를 조립하고 소프트웨어 설치를 해본 것 같다. 이때 들었던 감사인사들이 내 인생에서 느꼈던 강렬한 기억 중 하나였다.
이처럼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컴퓨터에 푹 빠져서 살았고 내 고등학교 생기부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해주고 있다.
🤔컴퓨터?공학과
그런 꿈을 가지고 컴퓨터 분야의 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흥미진진한 대학 생활을 했으나, 아쉽게도 코딩에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었다. 굉장히 많은 요인이 겹쳤겠지만, 학부 과정에 큰 흥미를 두지 못한 이유는 재미가 별로 없었다. C/C++, JAVA, Python을 다 배웠지만 그저 재미가 없었다. 뭔가 만드는 느낌은 나지만 이걸로 뭘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었고 과제로 주어진 코드를 짜는 건 더욱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게 컴퓨터 조립이랑 연관이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컴퓨터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려면 전자공학과에 진학했어야 했다. 그렇게 학부와 코딩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졸업반에 가까워졌다. 그러던 중 3학년 겨울방학에 에브리타임에서 웹 개발 튜토리얼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글을 보았다.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일단 이거라도 하자는 느낌으로 코딩을 시작했고 처음 자바스크립트를 접했다. 웹을 만들고 화면에 보여준다는 개념을 실제로 직접 해보니 꽤나 흥미가 생겼다.(내가 재학할 당시 커리큘럼에서는 직접 웹개발을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없었다. 지금은 한 과목 생긴 것 같지만) 그리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번의 팀 프로젝트를 웹 프론트엔드 개발 파트를 맡아 진행했다.
2번의 프로젝트 이후 현장실습을 통해 웹 개발자 인턴을 하기도 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결과물을 내어야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2달간 정말 열심히 했다. 매일 일지와 아이디어 노트 쓰고 피드백받으러 가고 집에 와서도 코드를 보고 고치고 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학부에서 배운 문서화와 애자일 방법론, 그리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태도를 유지했던 것이 좋은 결과의 원인이 되었다. 기간 내에 주어진 요구사항을 다 구현했고 인턴 연장 제안까지 받을 수 있었으며 이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교내 수기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들어낸 결과물이 눈에 보이다 보니, 이런저런 성과를 처음 내어보니 '웹 개발자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웹 프론트엔드로 커리어를 시작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만으로 취업시장에서는 메리트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학부에서 많은 경험을 쌓지도 못했고 시장 역시 코로나 이후로 개발자의 수요가 많이 줄었으며 평균적인 개발자의 수준이 매우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학습과 데브코스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 와중에 지원했던 부트캠프가 데브코스였다. 글을 쓰는 오늘 기준으로 벌써 1년이나 되었다.
데브코스에서는 정말 많은 지식을 배웠다. 기본적으로 코딩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로토님, 영웅님, 선협님과 같은 개발을 가르쳐 주시는 개발자 분들께서 많은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주로 웹 프론트엔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이었고 이 기간에는 JavaScript 실력이 꽤 많이 향상되었으며 관련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의 핵심 원리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2번의 팀 프로젝트에서 담당한 팀장 경험도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프로젝트를 기획부터 배포, 운용까지 하며 프로덕트를 구성하는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었고 팀장의 역할을 하며 PM의 역할과 기술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오면 약간 부담감을 느끼지만, 어려운 상황과 의사 결정을 해결하는데에서 오는 보람이 더 큰 것 같다.
수료 이후에도 꾸준히 개인공부와 구직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데브코스를 진행하며 프론트엔드 개발에 더 심취했고 이 생태계가 재미있고 좋아졌다. 또한 6개월간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제대로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나의 강점과 몰입을 즐긴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팀 환경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고, 때로는 내가 문제를 제기해서 팀원들의 의견을 받아 해결하는 그런 과정을 말이다.
✋현재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금의 나를 단 한 줄로 정의하라고 하면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프론트엔드 개발을 좋아하고 커뮤니케이션에 강점이 있는 주니어 개발자
위에서 언급했던 굵직한 사건들이 현재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우연히 시작했던 웹 개발로 현재는 웹 개발 생태계에 빠져들 수 있었고, 그 안에서 4번의 프로젝트와 1번의 인턴생활을 겪으면서 내가 이 업계에서 무언가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꽤나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평가를 해준 동료들에게 더욱 감사해야겠지만. 그리고 현재는 내가 가진 기술로 사람들에게 이로운 가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지난 몇 달간의 고민을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길게 풀어보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덧붙여보면..
지난 2023년에 나는 나를 너무 싫어했다. 왜 이러한 공부들을 미리 안 했고, 왜 대학이라는 인생의 황금기를, 비록 코로나라는 핑계가 있을지라도 왜 그렇게 보냈을지 너무 과거의 나를 원망하고 후회했다. 더 잘했다면 지금의 인생이 많이 바뀌어 있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과거에 화를 낼 때 들려오는 분노 가득 찬 메아리는 오히려 나를 끊임없는 굴레에 가두었다.
그래서 2024년에는 후회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앞으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살고 있고 앞으로 더더욱 열심히 살고 싶다. 2024년의 나는 개발자로서 일하고, 개발자로서 공부하며, 개발자로서 기여하고, 개발자로 합류하고 싶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구직활동과 개인공부를 병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글또 역시 그런 활동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 많은 인사이트를 줄 것으로 기대하여 합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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